이진섭 씨는 발달장애인 이균도 씨의 아버지다. 두 사람은 지난 3월과 10월, 장애인 문제를 알려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, 부산에서 광주를 걸어서 여행하는 ‘균도와 세상 걷기’를 통해 유명해졌다. 두 사람의 39박 40일 세상걷기 이후, 지난 4월에는 국회에서 ‘장애아동복지지원법’이 통과되기도 했다.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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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2011-11-28
발달장애인 아들과 국토 한바퀴 - 이진섭
지난 봄, 눈에 띄는 소식을 접했다. 한 아버지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스무 살 아들을 데리고 국토 종단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. 부산에서 서울까지, 먼 길이었다. 장애인 정책을 개선하라는 구호를 몸에 두르고 큰 가방을 짊어진 두 사람이 걷는 사진이 보였다. 아버지는 매일의 걷기 일지를 한 장애인 인권 관련 웹진에 소개하고 있었다. 기사를 보면서 무수한 물음표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.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물음표는 ‘어떻게 아버지가?’라는 것이었다.
보통의 가정이 그렇듯이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에서도 자녀 양육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인 경우가 대부분이다.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이 분명할 때에도 아버지들은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. 돌봄 노동에 익숙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. 어느 날 문득 예고없이 인생에 등장한, 장애를 가진 자녀를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어머니들보다 아버지들은 유달리 느린 편이다.
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기사를 읽으며 무수한 물음표들을 떠올리고 또 아버지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. 나에게도 두세 살의 지적 능력을 가진, 나이는 어느새 서른하나가 된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다. 발달장애인이란 이렇게 제 나이에 발달되어야 하는 신체, 언어, 인지 기능 등의 발달이 성취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어버리는, ‘자라지 않는’ 사람들이다.
스스로가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누나이면서도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의 문제, 그들의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. 가족 안에서도 동생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. 이것은 나 역시도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아직 동생을 나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일 것이다.
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균도 아버님이 마침 서울로 강연을 하러 오실 일이 생겨,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. 당일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던, 여느 때와는 다른 상황의 연속이었다. 아드님을 데리고 오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인터뷰를 준비한 우리는 그것을 뒤늦게야 알고 조금 당황했었다. 또 균도 아버님은 계속해서 돌봄이 필요한 아드님을 쉴 새 없이 신경쓰면서, 우리와 대화를 시작하셨다.
보통의 가정이 그렇듯이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에서도 자녀 양육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인 경우가 대부분이다.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이 분명할 때에도 아버지들은 무기력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. 돌봄 노동에 익숙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. 어느 날 문득 예고없이 인생에 등장한, 장애를 가진 자녀를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어머니들보다 아버지들은 유달리 느린 편이다.
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기사를 읽으며 무수한 물음표들을 떠올리고 또 아버지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. 나에게도 두세 살의 지적 능력을 가진, 나이는 어느새 서른하나가 된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다. 발달장애인이란 이렇게 제 나이에 발달되어야 하는 신체, 언어, 인지 기능 등의 발달이 성취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어버리는, ‘자라지 않는’ 사람들이다.
스스로가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누나이면서도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의 문제, 그들의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. 가족 안에서도 동생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. 이것은 나 역시도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아직 동생을 나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일 것이다.
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균도 아버님이 마침 서울로 강연을 하러 오실 일이 생겨,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. 당일의 만남은 예상치 못했던, 여느 때와는 다른 상황의 연속이었다. 아드님을 데리고 오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인터뷰를 준비한 우리는 그것을 뒤늦게야 알고 조금 당황했었다. 또 균도 아버님은 계속해서 돌봄이 필요한 아드님을 쉴 새 없이 신경쓰면서, 우리와 대화를 시작하셨다.



